> 나무를 찾아서 W > 나무 생각 W
나무 생각w
제목 길 위에서 속도를 잃으니, 풍경의 아름다움이 손에 잡혀서 날짜 2019.10.27 18:51
글쓴이 고규홍 조회 144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생각] 길 위에서 속도를 잃으니, 풍경의 아름다움이 손에 잡혀서

  단풍의 계절입니다. 주말에 동해의 항구를 다녀왔습니다. 찾아뵈어야 할 분들이 있어서, 바닷가에 오래 머무르지는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항구에 도착해 바닷가에서 편안하고 넉넉히 산책할 시간을 가지려 했지만, 그리 하지 못했습니다. 단풍을 찾아 길 떠나는 분들이 많을 줄 짐작하고, 이른 새벽에 출발했지만 별무소용이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세 시간이 채 안 되는 거리였지만, 무려 다섯 시간이나 걸렸거든요. 서울에서 양양까지 내내 교통 정체 속에서 천천히 걷듯이 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간에 휴게소를 들르긴 했지만 휴게소에도 사람이 너무 많아 오래 머무르지 못했는데도 그랬습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속도가 사라진 고속도로의 차창으로 내다보는 우리 산의 풍경은 바깥으로 바깥으로, 들로 산으로 나갈 수밖에 없을 지경이니까요. 참 아름다운 단풍 풍경이었습니다. 지난 계절 내내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시원스레 풀어주던 초록의 풍경이 어느새 울긋불긋 온갖가지 빛깔로 물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드라마틱한 빛깔은 붉은 빛일 수밖에요. 붉은 빛이라고 쓰기는 했지만, 자세히 보면 그 붉은 빛도 한 가지가 아닙니다. 얼마 전에 초록이 다 초록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붉은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산 깊은 곳까지 다가갈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멀리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빛들만이 가지는 제가끔의 본색이 따로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속도를 잃은 고속도로 위의 자동차 안에서 그저 이 땅의 아름다운 단풍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거의 멈춰 서 있는 자동차 안에 갇혀 있던 모든 분들의 마음이 똑같았을 겁니다. 속초 항까지 가는 데에 다섯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찾은 속초 항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습니다. 훤히 트인 동해 수평선을 내다보며 짧은 길을 천천히 걷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정된 프로그램을 잘 마친 뒤, 다시 바닷가를 걷고 싶었지만, 돌아오는 길이 걱정돼 서둘러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아쉬움 컸던 주말이었습니다.

  나무는 사철 어느 계절이라도 우리를 부릅니다. 아무리 지치고 힘든 일상이라 해도 우리 곁의 나무가 어김없이 계절마다 보여주는 찬란한 빛깔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설레는 기쁨입니다.

  바람이 찹니다. 그래도 지금은 우리 곁의 아름다운 나무를 찾아서 길 위에 올라야 할 시간입니다.

- 천천히 걷고만 싶었던 속초 바닷가를 다시 떠올리며 10월28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솔숲닷컴(http://solsup.com)의 '추천하기'게시판에 '나무 편지'를 추천하실 분을 알려 주세요.
접속이 어려우시면 추천하실 분의 성함과 이메일 주소를 이 편지의 답장으로 보내주십시오.

○●○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글쓴이 비밀번호
등록
목록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