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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길섶에 피어난 한 송이 꽃을 오래 바라보아야 할 가을입니다 날짜 2019.08.30 20:05
글쓴이 고규홍 조회 207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생각] 길섶에 피어난 한 송이 꽃을 오래 바라보아야 할 가을입니다

  구월의 첫 월요일입니다. 긴 시간 동안 고요했던 대학 캠퍼스도 청춘의 발걸음으로 왁자해졌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은 언제나 이러저러한 일들로 말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고한 말들 가운데에서 ‘참’을 찾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귓가에 스치는 사람의 모든 말들에는 어김없이 잔혹한 살기가 잔뜩 배어있습니다. 세상 일 가름하는 데에 익숙지 못한 탓에, 사람살이는 매오로시 갑갑하기만 하고 허공을 가득 채우는 텅빈 말들로 어질머리가 일어납니다. 그 많은 옛 사람들이 왜 ‘은거(隱居)’의 길을 가야 했는지 조금은 알 듯한 날들입니다.

  이미 숲 길섶에 피었던 상사화 꽃송이는 하나 둘 시들어 떨어질 때가 지났습니다. 여름이 꼬리를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 불쑥 솟아오른 상사화 분홍 빛 꽃은 초록 잎도 없이 긴 꽃대궁을 솟구쳐 올리고 외로이 꽃을 피웠습니다. 잎새 없이 꽃 피어나는 풀꽃이 꼭 상사화만 있는 건 아니지만, 꽃대궁이 유난히 길쭉한 탓인지 보는 마음이 언제라도 편하지 않습니다. 그냥 에뻐서 좋다고만 하기 어렵지요. 언제나 불안해 보이기만 하는 그의 화려한 꽃송이 앞에서는 그래서 더 오래 머무르게 됩니다. 금세 지고 말 꽃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좀 기다려야 하겠지만, 상사화 꽃 지고 이제 얼마 있으면 상사화 꽃 닮은 꽃무릇 꽃이 피어날 차례입니다. 이파리 없이 길쭉하게 솟아올린 꽃대궁 위에 불균형하게 피어난 꽃송이 모양은 상사화와 다를 게 없지만, 빛깔이 다릅니다. 상사화 꽃은 보랏빛에 가까운 분홍 빛에 가깝다 할 수 있지만 꽃무릇은 눈이 시릴 만큼 붉은 자줏빛입니다. 꽃무릇 꽃 붉게 피어날 즈음이면 큰 나무에 매달려 지난 계절 동안 지상의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리려 안간힘했던 이파리들이 노동의 수고를 덜고, 붉고 노란 빛깔의 단풍 물 올리겠지요.

  사람의 마을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정체된 숱한 말들에도 불구하고, 숲의 여리디 여린 풀꽃들은 말없이 제 빛깔과 모양으로 살림을 이어갑니다. 사람의 마을에서 일어나는 한없이 추악한 말들 사이로 꽃 한 송이가 던져오는 진정한 삶의 알갱이를 가만가만 짚어봅니다. 가을입니다. 숲의 작은 풀꽃들에서 피어나는 참 아름다움과 정겨운 풍요가 사람의 마을까지 널리 피어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곧 다가올 우리의 추석을 모두가 웃으면서 즐거이 맞이할 수 있다면 정말정말 좋겠습니다.

- 꽃 한송이에 담긴 정겨운 풍요를 떠올리며 9월 2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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