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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사는 도시에서 나무가 살아가는 법 혹은 슬픈 운명 날짜 2019.06.01 20:04
글쓴이 고규홍 조회 317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생각] 우리 사는 도시에서 나무가 살아가는 법 혹은 슬픈 운명

  요즘 나는 조금 우울합니다. 창졸간에 작업실 앞 풍경이 달라진 때문입니다. 작업실로 쓰는 오피스텔 앞에는 부천법원이 있거든요. 《나무편지》에서 그 법원의 나무들 이야기를 종종 올렸기에 기억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나무편지》 뿐 아니라, 제가 쓴 책 《도시의 나무 산책기》에서도 법원 뜰의 나무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이야기했지요. 그리 큰 건 아니어도 좋은 나무가 오순도순 자라는 뜨락입니다. 일정에 쫓겨 멀리 떠날 수 없지만, 나무가 보고 싶을 때에 들러서 몇 그루의 나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는 곳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잠시 산책에 나서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제가 작업실의 주변 환경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이제 ‘과거형’이 되고 말았습니다.

○ 소나무 회화나무 옥매 모과나무 박태기나무 … 나무 나무들 ○

  며칠 전의 저녁이었습니다. 그 날도 작업실에서 하루 일정을 다 보낸 뒤, 해 지고 어두워진 밤중에 터덜터덜 지친 발걸음으로 작업실을 나섰지요. 매일 지나는 길이건만 주변 분위가가 낯설었습니다. 뭘까! 그야말로 그 날 하루 낮 동안에 제가 좋아하던 풍경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당황스러워 길가에 서서 한참 주변을 살폈지요. 인도 변을 따라 줄지어 섰던 꽤 크게 자란 나무들이 모두 사라지고 휑하게 텅 비었습니다. 실은 법원 정원을 갈아엎고 다른 건물을 세울 계획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았습니다. 그랬다 하더라도 너무 갑작스러웠습니다. 잠시 넋을 놓고, 휑하니 텅빈 하늘을 바라보고 섰습니다. 도시에서 나무가 살아가려면 이토록 가혹한 운명을 벗어날 수 없지 싶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며칠 전까지 정원이었던 그 자리, 그 담장에 공사장 가림막이 사람의 눈길을 닦아세웠습니다. 참! 이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바라보는 마음은 안타깝고 아쉬울 뿐입니다. 길모퉁이에 높지거니 서 있던 회화나무, 그 옆에 낮은 키로 서서 첫사랑의 향기를 피우던 라일락, 봄비 내리던 날 분홍 빛 꽃을 소담하게 피웠던 모과나무 세 그루, 짙은 보랏빛 꽃으로 봄 노래를 부르던 박태기나무, 그도 그렇지만 땅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피어났던 봄맞이꽃, 주름잎 꽃, 냉이 꽃, 씀바귀 꽃, 꽃마리 꽃, 그리고 몇 그루의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피어났던 버섯들, 옥처럼 맑고 하얗게 피어났던 옥매 꽃, 여느 곳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겹철쭉꽃,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그냥 사람들의 도끼날에 스러졌을까, 아니면 어딘가 다른 자리로 옮겨갔을까요.

○ 힘겨울 때 함께 했던 나무들, 이제는 다시 만나기 어려워 ○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나의 오랜 동무 나무들, 다시 볼 수 없게 된 겁니다. 작업실 오는 길에서나,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다정한 동무를 잃은 나는 어쩔 수 없이 우울해집니다. 이제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다 초록의 나무들이 보고 싶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기야 조금 더 걸어나가면 근린공원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정말 그래도 오랫동안 정을 붙이고 더불어 지내온 동무 나무들이 사라졌다는 상실감은 하릴없이 깊은 우울감을 끌어올립니다. 어쩔 수 없겠지요. 그게 도시에서 나무가 살아가는 법이고, 운명이겠지요. 그 동안 외로울 때, 힘겨울 때 함께 했던 법원 뜨락의 나무들, 풀꽃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도 채 하지 못했는데 다시 볼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마 이 우울은 며칠 더 이어지겠지요.

  지금 우리 곁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이 그래서 더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어느 날 갑자기 곁에서 사라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더 살갑게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지금 서 계신 도시의 나무들은 어떠한가요. 곁에 있는 나무를 한번 더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나무편지》에 함께 올리는 사진은 주말에 다녀온 천리포수목원의 식물들입니다. 위에서부터 만병초 종류, 긴잎홍가시, 시계꽃, 멀구슬나무, 중국해당화입니다.

  고맙습니다.

- 사라진 내 곁의 나무들이 하도 그리워 우울한 마음으로 6월 3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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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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