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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버지 생각과 아버지의 만년필로 쓴 한 권의 새 책 날짜 2018.05.07 20:36
글쓴이 고규홍 조회 863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생각] 아버지 생각과 아버지의 만년필로 쓴 한 권의 새 책

  이태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 계신 곳에 다녀왔습니다. 어버이날을 앞둔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며칠 새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기 때문이었어요. 칠십 년 전 쯤에 이 땅에서 벌어진 전쟁을 잠깐 피할 요량으로 아무것도 챙기지 않은 채 배를 타고 고향을 떠나온 제 아버지는 금세 고향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의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눈 앞에 보이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고향은 인천 강화도의 북단인 북성리에서 육안으로도 내다보이는 곳이거든요. 워낙 제 생각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았던 아버지는 고향에 가고 싶다는 말조차 채 꺼내지 않고 이승에서의 삶을 마쳤습니다.

○ 고향에서의 풍요만을 그리던 슬픈 아버지의 인생 ○

  이 즈음 아버지가 자꾸 떠오른 건 잃어버린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의 희망대로 그곳에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정작 돌아가야 할 아버지는 한줌 흙이 되어 이 땅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더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속내를 드러낸 적이 많지 않지만 아버지도 고향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함께 남하하신 아버지의 고향마을 어른들은 그곳에서 아버지는 매우 풍요롭게 살았다고 합니다.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이남에 내려온 아버지의 턱없이 모자란 생활력을 보면 그게 맞는 말이지 싶었습니다. 이곳에서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악착같이 일하는 법을 몰랐어요. 그저 고향에서의 풍요를 그리기만 하면서 어처구니없이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다른 아버지들과 비교하면서 내 아버지를 원망했던 적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대학 시절 즈음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따르던 한 선배와 대폿집에서 술잔을 나누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선배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선물이라며 낡은 은제銀製 만년필을 보여주었습니다. 새 만년필이 아니라 아버지가 쓰시던 만년필이었습니다. 부러웠습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제 아버지로부터는 죽었다 깨어나도 받을 수 없는 선물이기에 더 그랬습니다. 제게 만년필 수집벽이 생긴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을 수 없다면 내가 구해서 가지면 되지 싶었던 거죠.

○ 아버지가 쓰던 만년필을 물려받고 싶었지만 ○

  그때부터 만년필을 모으기 시작했고, 지금은 꽤 많은 만년필을 가지게 됐습니다. 백 자루가 좀 넘지 싶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만년필을 모아봐야 그건 아버지가 쓰던 만년필만큼 소중할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서랍 속에 쌓인 만년필을 어떻게든 활용해야 했기에 만년필로 무언가 쓰자고 마음 먹었지요. 그래서 시작한 일이 한시漢詩를 노트에 베껴 쓰고, 한글로 번역하는 일이었습니다. 워낙 많은 한시를 무작정 베끼기 어려워 일단은 ‘나무’가 들어 있는 한시만을 골라 베꼈어요. 노트가 한 권 두 권 쌓였고, 그 일을 알게 된 출판사 편집자가 어느 날 책을 한 권 내자는 제안을 건네왔지요. 처음엔 망설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출판 제안을 받아들였고, 마침내 지난 사월 초에 책을 냈습니다.

  이미 두 권을 펴냈던 《나무가 말하였네》의 후속편으로 이번에는 《나무가 말하였네-옛시 : 나무에 깃들어 살다》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이 즈음 아버지가 더 생각난 건 이 책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이 책에 쓴 머리글의 제목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만년필로 쓰다〉입니다. 사연은 복잡합니다만, 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제게 만년필 한 자루를 남겼습니다. 복잡한 사연은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전해드리겠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아버지가 남긴 예금통장이 있었는데, 그 통장에 남은 돈을 가족이 균등하게 나누고 보니, 제게 돌아온 몫이 백이십칠만원이었습니다. 그 돈으로 만년필을 샀고, 그 만년필로 이 책의 원고를 썼다는 이야기입니다.

○ 漢詩 안에 담긴 나무의 이미지를 더 선명하게 ○

  한문학자가 아닌 제가 한시를 번역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한자사전에 채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 식물의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더 명확하게 드러내는 일이 그랬습니다.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제가 이 책의 머리글에도 썼듯이 괴槐라는 한자가 그렇습니다. 이 글자의 뜻을 옥편에서는 ‘홰나무’라고 표시했습니다. 홰나무는 우리나라의 일부 지방에서 회화나무를 부르는 말이기는 합니다만, 올바른 표현이 될 수 없습니다. 또 같은 괴槐를 느티나무로 쓰기도 하고, 회화나무로 쓰기도 해서 혼란스럽습니다. 바로 그같은 자리가 제가 끼어들 자리라고 생각한 거죠. 게다가 굳이 덧붙이자면, 현대 우리 국어에 알맞춤한 언어로 옮기는 것도 제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시를 한글로 옮기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보다 더 많이 집중한 것은 그 뒤에 덧붙인 한 편의 에세이입니다. 시를 해설하는 글은 아닙니다. 예전부터 시는 해설을 통해 감상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이미지를 제가끔 자신의 상황과 입장에 맞춰 받아들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한 편의 한시를 번역한 뒤에는 그 시와 연결할 수 있는 제 생각과 경험을 털어놓는 한 편의 에세이를 보탰습니다. 지난 이십 년 동안 나무를 찾아다니며 나무와 함께 생각하고 느꼈던 많은 느낌과 생각들을 풀어헤친 겁니다. 아무쪼록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많은 분들에게 느낌을 남기는 책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인터넷 서점으로 연결됩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나무가 말하였네 옛시 - 나무에 깃들어 살다》 상세 보기

 

○ 부천시립 상동도서관의 오월 강좌에 초대합니다 ○

  아. 그리고 바로 내일은 부천 상동도서관의 월례 《나무강좌》가 있는 날입니다. 올 《나무강좌》는 처음부터 소나무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만, 아직 소나무 이야기는 하고합니다. 그 많은 소나무 이야기를 올에 다 끝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소나무 가운데에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나무들 이야기를 전해드릴까 합니다. 바로 백송 이야기입니다.


  이번 상반기 《나무강좌》는 오월 강좌로 마무리하게 됩니다. 유월 둘째 주 수요일은 지방선거가 있는 날이어서, 우리 강좌도 쉬게 됨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오월 강좌 뒤에는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이천십팔 년 하반기 강좌 신청자를 모집하게 됩니다. 다음 강좌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이태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을 마음에 새기며 어버이날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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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신명기 (2018.05.08 07:42)
어버이날 아침~~
아버지와 이별을 한 모든 사람 마음에
다시 아버지를 찾게 만드셨네요~~
저도 아버지를 생각하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하루를 지내야겠습니다
책 잘 사서 꼼꼼하게 읽어보겠습니다~~
고규홍 (2018.05.08 08:43)
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김동락 (2018.07.16 18:20)
그 아부지가 저도 오늘따라 그립습니다. 그토록 미웠던 그분이...
오늘 영천강의에서 말씀하신 반지갑 속 명함처럼 저도 아버지와의 다름을 틀림으로 느꼈던 게지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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