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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뿔 들어 누우니 나무 향한 그리움 더 깊어집니다 날짜 2018.03.23 20:34
글쓴이 고규홍 조회 169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생각] 고뿔 들어 누우니 나무 향한 그리움 더 깊어집니다

  고뿔 들었습니다. 심하게요. 불현듯 어린 시절에 가슴 졸이며 보았던 영화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하도 오래 된 영화여서 기억은 흐릿합니다. 제목이 아마 《영광의 라이더》였을 겁니다. 오토바이 선수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인데요. 영화의 내용이 죄다 기억나는 건 아닌데, 인상적인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한 선수에게 그의 스승이 “핸들을 잡았을 때에는 추억을 떠올리지 말라”는 말을 합니다. 처음엔 그게 무슨 뜻인지 영화의 주인공도 관람객이었던 어린 나도 잘 몰랐습니다. 과거를 추억하다 보면 저절로 눈을 감게 된다는 겁니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잠깐이나마 눈을 감게 되면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게 된다는 거죠. 그러나 스승의 조언과 무관하게 주인공은 오토바이를 타면서 자기도 모르게 달콤했던 과거를 추억하게 됩니다. 자연스레 눈을 감게 됐고, 결국 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 고뿔 드니 떠오르는 오래 된 영화 한 편 ○

  오래 된 영화를 떠올린 건, 지난 몇 번의 《나무편지》에서 과거를 추억하는 이야기를 풀어 쓴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 다니던 학교의 나무를 떠올렸고, 이어서 옛날 그 달동네 골목길을 떠올리게 하는 한 그루의 큰 나무 이야기를 썼습니다. 미처 다 쓰지 못했지만 짧은 《나무편지》를 쓰는 동안 어린 시절의 참 많은 것들을 떠올렸지요. 유난히 분주하게 지내는 이 즈음, 공연히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동안 제 마음의 눈이 잠시 감겼던 것 아닐까 하는 어이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빠르게 지나는 일상의 속도 속에서 잠시 마음의 눈을 감게 됐고, 그 사이를 타고, 아주 질이 나쁜 바이러스가 몸을 습격한 거라고 생각한 겁니다. 결국 그 고약한 바이러스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심한 고뿔에 휘영청 쓰러진 것이라고 꿰어 맞추고 싶었던 겁니다.

  오랜만에 병원도 가고, 약도 먹는 중이지만, 고뿔은 여전하고, 일상의 속도는 이번 주에도 여전히 빡빡하게 이어집니다. 식목일이 들어있는 사월, 누구라도 한번은 나무를 더 쳐다보게 되는 즈음입니다. ‘나무 이야기’를 찾으시는 분들도 많고, 찾아가야 하는 곳도 많습니다. 또 오래 준비했던 새 책도 곧 나올 겁니다. 짬짬이 잘 쉬고, 푹 자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다음 《나무편지》에는 더 건강하고 풍요로운 이야기 담아 전해드리겠습니다. 고뿔 들 때마다 저절로 떠오르는 한 편의 시가 있습니다. 오늘 《나무편지》는 그 아름다운 시 한 편 아래에 적으며 마무리하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오늘 《나무편지》의 사진은 엊그제 영주 지역 답사에서 만나고 온 나무들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전해드리겠습니다.

- 고뿔 들어 나무 향한 그리움 더 깊어지는 3월 26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아파서 몸져 누운 날은
  - 고정희
  
  오월의 융융한 햇빛을 차단하고 아파서 몸져누운 날은
  악귀를 쫓아내듯 신열과 싸우며 집 안에 가득한 정적을
  밀어내며 당신이 오셨으면 하다 잠이 듭니다
  
  기적이겠지... 기적이겠지...
  
  모두가 톱니바퀴처럼 제자리로 돌아간 이 대낮에,
  이심전심이나 텔레파시도 없는 이 대낮에,
  당신이 내 집 문지방을 들어선다면 나는 아마 생의 최후 같은
  오 분을 만나고 말거야. 나도 최후의 오 분을 셋으로 나눌까
  그 이 분은 당신을 위해서 쓰고 또 이 분간은 이 지상의 운명을
  위해서 쓰고 나머지 일 분간은 내 생을 뒤돌아보는 일에 쓸까
  그러다가 정말 당신이 들어선다면 나는 칠성판에서라도
  벌떡 일어날거야 그게 나의 마음이니까 그게 나의 희망사항이니까...
  하며 왼손가락으로 편지를 쓰다가
  고요의 밀림 속으로 들어가 다시 잠이 듭니다.
  
  흔들림이 끝난 그 무엇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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