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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생각w
제목 나무가 아름다운 평화로운 세상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날짜 2017.09.03 19:01
글쓴이 고규홍 조회 243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생각] 나무가 아름다운 평화로운 세상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때 그 바다, 그날 그 파도, 이제는 잦아들었겠지요. 가을을 품은 여름의 끄트머리에 다가섰던 그 날, 강릉의 바닷가에는 파도가 거셌습니다. 먼 수평선에서 밀려온 물결은 모래사장에 가까워오면서 성난 파도 되어 튀어오르다가 한 덩어리의 포말을 냅다 팽개칩니다. 저만치 멀리에서는 다시 또 한 굽이의 물결이 다가옵니다.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그냥 멀리서만 바라보았습니다. 무더웠던 지난 여름은 그렇게 큰 파도와 함께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바람 부는 그 바닷가에 웅크리고 서 있는 해당화 가지에 빨간 열매가 올라왔습니다.

  비 바람, 큰 파도에 울렁이는 바닷가에서 낮게 이룬 초록 울타리 사이로 삐죽이 내민 새빨간 해당화 열매는 보석처럼 찬란했습니다. 늦여름이지만 여전히 꽃을 달고 있는 해당화가 적지 않았지만, 몇몇 가지 사이에 매달린 해당화 열매는 싱그러웠습니다. 방울진 빗물을 달고 있어서 더 그렇게 보였을 테고, 가지마다 촘촘히 돋아난 자디잔 가시도 낮은 키의 해당화를 더 옹골찬 생명으로 느끼게 했을 겁니다. 끊이지 않고 철석거리는 파도 소리를 벗 삼아 바닷가 모래 사장의 해당화 울타리를 천천히 걸으며 지난 여름에 만났던 나무와 사람들의 안부를 하나 둘 생각하고, 다가오는 가을에 새로 만나게 될 나무와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몇 남지 않은 해당화 꽃은 한창 때를 지나 이제 시들어 떨어질 일만 남았습니다. 아마도 떨어지는 해당화 꽃송이 따라 여름은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줄 채비를 마칠 겁니다. 지금 쯤은 해당화 꽃 모두 지고, 꽃 진 자리에는 새빨간 열매들이 조롱조롱 올라왔겠지요. 바다는 지난 여름의 부산함을 잃고 적막에 들고, 해당화 낮은 울타리에는 가을 바람이 스밀 겁니다. 우리 곁에 다가왔던 날들은 제아무리 힘겨웠어도 마침내는 떠납니다. 우리 사는 이 땅의 생명이 오래도록 이어온 흐름입니다.

  가늘게 내리는 비인지, 안개인지, 바다 위로 뿌옇게 내려앉은 젖은 기운이 수평선을 삼켰습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지 가늠되지 않는 바닷가 철도역에는 오래 전의 텔레비전 드라마 때문에 유명해진 소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동쪽에 있다 해서 정동진이라고 부르는 철도역입니다. 나무 곁에는 한 사람이 말없이 서 있습니다. 열차를 타고 멀리 떠날 것도 아니지만, 철도 역 안까지 들어와 먼 바다를 내다보는 일은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헤아려보니, 이 바닷가에서 늦은 오후를 편안히 지내고 돌아온 것도 벌써 보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을입니다. 고요하던 대학도 새 학기를 시작하고 다시 북적입니다. 숲 깊은 곳에서는 망태버섯이 떠나는 여름을 배웅합니다. 세상살이의 번거로움은 여전히 잦아들 줄 모르고 시끌벅적합니다. 사람 사는 이 곳이 더 평화로워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은 갈수록 더 간절해집니다.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곁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살피고, 때로는 생존을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이기도 하지만, 결코 긴 세월 동안 이어온 평온을 해치지 않는 숲의 여러 생명들처럼 우리 사는 이 땅에도 숲을 닮은 평화가 더 오래 지켜질 수 있기를 바라는 아침입니다.

 

  가을 꽃, 상사화가 천천히 그러나 화려하게 숲의 한 켠에서 올라옵니다. 여름 보내고 가을 다가온다는 숲의 또렷한 신호입니다. 구월 들어 처음 맞는 한 주의 시작, 이 땅의 참 평화를 바라며 《나무편지》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 나무가 아름다운 평화로운 세상을 기원하며 9월 4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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