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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라늄 화분 앞에 멈춰 서서 어머니가 하도 그리워…… 날짜 2017.06.23 16:03
글쓴이 고규홍 조회 374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생각] 골목 길 제라늄 화분 앞에 멈춰 서서 어머니가 하도 그리워……

  일본 트레킹 중에 오래된 전통마을의 조붓한 골목 길을 걸었습니다. 맥없이 걷다가 얼어붙은 듯 멈춰섰습니다. 허름한 벽돌 담의 화분 때문이었습니다. 제라늄 화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기억하는 동안 내내 제가 사는 집에는 제라늄 화분이 단 하루 한 시간도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육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제라늄 화분은 제 삶과 함께 했습니다. 주인은 바뀌었지만 지금도 제라늄 화분은 여전히 집 창가에 있습니다. 한 가지 식물과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제라늄 꽃을 그리도 좋아한 어머니 덕분입니다.

  제라늄 꽃을 좋아하신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고작 한 해 지났습니다. 화분 위에서 활짝 핀 제라늄 꽃잎 사이로 희미하게 떠오른 어머니의 고운 얼굴이 발길을 붙잡았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가난한 살림 탓에 지겨울 만큼 셋방살이 이사가 잦았습니다. 이사 때마다 남루한 허드레 이삿짐에 제라늄 화분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제가 사는 방 창가에는 언제나 제라늄 화분이 있었습니다.

  내가 사는 방 창가에 제라늄 화분이 있다는 게 더없이 좋을 때가 있었습니다. 사춘기 쯤이었을 겁니다. 생 떽쥐베리의 《어린왕자》를 읽던 때였습니다. 어린 왕자가 등장하기 전의 앞 부분에 제라늄 화분이 나옵니다. 생 떽쥐베리는 “제라늄 화분이 놓인 집”을 아름다운 집, 행복한 집, 풍요로운 집의 상징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늘 창가의 제라늄 화분을 바라보며 자랐던 가난한 나는 셋방살이 우리 집이 바로 《어린왕자》의 ‘행복하고 풍요롭고 아름다운 집’이라고 생각했지요. 생 떽쥐베리가 이야기한 것처럼 돈만 많이 쌓아둔 껍데기 부잣집이 아니라, 진정으로 풍요롭고 아름다운 집 말입니다.

  어머니는 제라늄 꽃이 피어나면 어린 저를 화분 앞으로 이끌며, 그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꽃은 예쁜데 잎사귀에서 나는 냄새는 참 고약하단다” 하면서 꽃송이를 바라보는 제 얼굴 가까이로 잎사귀를 밀어내거나 잎사귀를 손으로 비벼보라 하면서 장난을 치곤 하셨지요.

  제라늄의 잎사귀는 고약한 냄새를 가졌어요. 어머니는 그렇게 평생 동안 제라늄 화분을 가꾸며 사셨지요. 군색한 살림살이에서도 어머니는 아름다운 꽃송이에 눈길을 모을 수 있도록 어린 저를 제라늄 화분 앞으로 이끌어 주셨어요. 곱고 아름다웠던 그 어머니는 아흔 해를 넘게 사시고는 지난 해 설날 즈음에 돌아가셨습니다.

  일본의 마을 길에서 어머니의 그 화분과 똑같은 화분을 만났습니다. 발길이 얼어붙었습니다. 순간, 눈물이 스몄는지, 눈앞에 흐릿해졌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띄웠던 《나무편지》에도 썼지만, "엄마는 엄마"입니다. 한 해가 지났지만 어머니 향한 그리움은 잦아들지 않네요.

  이 아침의 《나무편지》는 어머니의 제라늄 이야기로 짧게 마무리합니다. 아무래도 잠시 가만히 앉아 오래 전 제라늄 잎의 고약한 냄새로 어린 제게 장난 치시던 어머니를 하염없이 떠올려야 하겠습니다.

  노래 〈가족사진〉 듣기

  위에 링크한 노래 〈가족사진〉을 함께 들으면서 어머니를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 ‘어머니’를 떠올리시는 모든 분들께 제라늄 꽃 화분과 가슴 저미게 파고드는 노래 〈가족사진〉을 함께 건네 올립니다.

 

- 제라늄 꽃에 담긴 어머니 삶의 무늬를 그리워 하며 6월 26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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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정선옥 (2017.07.06 12:27)
 꽃은 지므로 아름답고
사람은 죽음으로서
사람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남는다.
고규홍 (2017.07.06 14:26)
말씀 잘 새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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