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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의 큰 열매를 맺으려 이 겨울, 세상의 모든 나무들은…… 날짜 2016.12.04 13:20
글쓴이 고규홍 조회 775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 생각] 하나의 큰 열매를 맺으려 이 겨울, 세상의 모든 나무들은……

  푸르던 잎 우르르 지고나니 지난 계절 내내 온 힘을 기울여 맺은 열매들이 또렷이 드러납니다. 여느 열매에 익숙한 눈에는 생경할 수도 있는 모양으로 맺은 소사나무 열매도 그렇게 해바라기에 나섰습니다. 나무 가지에 남은 잎은 몇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가지 끝에 걸려 간당이는 이파리도 초록의 기운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힘없이 스러질 참입니다. 가지에 푸르던 잎 대신 새 열매가 도드라지게 떠올랐습니다. 지금 이 순간보다 더 아름다워야 할 내일을 꿈꾸며 잉태한 나무의 안간힘입니다. 나무가 여기까지 다가오는 길은 그리 쉽지 않았을 겁니다.

  열매는 숲에 더불어 사는 모든 생명들과 함께 정직하고 성실하게 지난 계절을 살아온 증거입니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살아온 소사나무는 한살이를 마치고 더 아름다운 다음 세상을 향한 꿈을 열매에 담았습니다. 잎처럼 보이는 열매 안쪽에 알알이 씨앗이 있습니다. 열매는 부는 바람 따라 어미를 떠나서 멀리 날아가겠지요. 그리고 어디에선가 다시 우뚝한 생명으로 자라날 겁니다. 씨앗으로서야 한갓 미소한 생명체이건만 그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이 하냥 크고 아름답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보아도 애처로워 보이기만 한 나무의 새 생명이 기특하고 고맙습니다. 생명의 이치, 자연의 순리를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사람살이의 답답함이 참담함으로 떠오르는 초겨울 풍경입니다.

  바람 매워도 나무들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아름다움을 풀어 헤치기 위해 나무들은 숲 한가운데에 서서 매운 바람에 맞서서 열매를 피워 올립니다. 까치박달 열매도 소사나무 못지 않게 생경한 모습입니다. 얼핏 보면 소사나무 열매와 비슷합니다. 까치박달도 소사나무와 같은 자작나무과의 서어나무속으로 분류되는 나무여서, 열매의 모양은 비슷합니다. 꽃처럼 혹은 벼이삭처럼 피어난 날개를 단 열매가 겨울 바람 따라 하늘거립니다. 어떤 모양으로 맺었든 모든 나무들은 이 계절 저마다 자신만의 모양으로 맺은 열매로 한살이를 마무리합니다.

  까치박달은 잘 자라면 15미터 정도 자라는 나무입니다. 숲의 여러 나무에 비해 그리 큰 나무라 할 수는 없겠죠. 까치박달을 유난히 귀하게 여긴 곳은 북유럽 지역이었습니다. 까치박달의 학명 Carpinus cordata Blume 가운데 속명인 Carpinus 는 켈트어로 ‘나무 중의 나무’ 혹은 ‘가장 훌륭한 나무’ 라는 뜻을 가졌다고 하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눈으로는 좀 지나친 이름 아닌가 생각하게도 됩니다. 까치박달이라는 우리 이름의 ‘까치’는 ‘작다’는 뜻을 가진 말로, ‘박달나무 가운데 작은 나무’ 라는 생각에서 붙인 것이니까요. 결국 규모나 생김새 때문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나무는 여느 나무라고 가벼이 볼 수 없다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라 봐야 할 겁니다.

  숲 한 켠에는 새빨간 열매가 나그네 발길을 붙잡습니다. 고작해야 지름 1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을 만큼 작은 열매 껍질에 오른 붉은 빛이 눈부십니다. 여느 계절보다 겨울에 훨씬 더 돋보이는 낙상홍의 열매입니다. 낙상홍은 관목형으로 자라는 나무여서 다른 계절에는 그리 돋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홀로 우뚝 서는 다른 교목형 나무에 비하면 아무래도 주목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지요. 하지만 빨간 열매를 맺은 뒤에만큼은 비슷한 빨간 색으로 맺는 호랑가시나무 열매와 함께 숲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합니다. 숲에 하얀 눈이라도 내리면 새빨간 열매는 그야말로 겨울 숲 풍경의 백미라 하지 않을 수 없지요.

  어제도 오늘도, 수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숲에는 뚜렷한 질서가 있습니다. 나무들은 결코 순리를 거스르지 않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오랫동안 지켜온 살림살이를 그대로 이어갑니다. 그게 곧 자연의 이치이고, 그 안에 생명의 진리가 살아 있습니다.

  가만히 겨울 열매를 바라볼수록 자연의 이치 혹은 생명의 진리와 정반대 방향으로 치닫기만 하는 우리 사는 세상이 부끄러워집니다. 죄에는 벌이 따르고, 진실은 거짓을 물리친다는 지극히 간단하고도 명료한 삶의 이치를 이루는 게 이토록 어렵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항상 그랬지요. 거짓은 끊임없이 새로운 거짓을 낳으며 진실을 에워쌉니다. 무시로 토악질이 날 만큼 더럽고 메스꺼운 거짓을 거둬내고, 세상의 모든 생명이 더 아름답게 살아갈 진리의 세상이 필경 멀지 않아 환히 열릴 것이라는 희망! 그것이 지금 새끼손톱보다 작은 나무 열매 앞에 사람이 부끄럽게 내미는 겨울 약속입니다.

  한 가지 덧붙여 알려드립니다. 〈나무편지〉에서 여러 차례 소개했던 책 《슈베르트와 나무》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선정한 ‘2016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도서에 선정됐습니다. 또 그보다 조금 앞서 펴낸 《소나무 인문사전》은 같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16년 세종도서 총류 부문’ 도서로 선정됐습니다. 늘 곁에서 아껴주시는 여러 분들의 덕입니다. 모두에게 감사 인사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 진실은 거짓을 물리친다는 지극히 단순한 삶의 이치를 떠올리며 12월 5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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