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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 찾아서 여행하는 건 사람살이 알갱이 찾아가는것" 날짜 2007.08.25 17:31
글쓴이 고규홍 조회 3044
 

"나무 찾아서 여행하는 건 사람살이 알갱이 찾아가는것"


노컷뉴스 | 기사입력 2007-08-25 10:36 





[뉴스를 클리핑하며]





엄청 긴 인터뷰 기사입니다. CBS 의 와이드 인터뷰인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에 8월 24일에 출연했었는데, 그때의 내용을 꼼꼼히 채록해 한 건의 기사로 만들었는데, 저도 다시 보기 힘들 만큼 긴 글입니다.





[뉴스 원문]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나무 칼럼니스트인 고규홍 씨





우리 사는 이곳에 큰 나무가 있습니다. 사람보다 먼저 이 땅에 자리 잡고 살아온 나무들이 이제는 사람들의 삶에 묻혀 홀로 아득한 향을 뿜어냅니다.


그래서 떠났습니다. 이 땅의 큰 나무를 찾아, 정처 없이 떠났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에 사표 한 장 던져놓고, 무작정 떠났습니다.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서도, 태풍 몰아치는 빗속에서도,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밭 속에서도, 나무를 찾아 헤맸습니다.





늘 혼자인 길에서, 우뚝 선 한 그루 나무를 바라보며…우리네 삶 깊이 감춰진 속살을 발견하고, 세월의 풍상과 옛 사람의 숨결을 찾았습니다.





나무를 찾아 10년을 헤맨 사람, 화성 전곡리 물푸레나무를 찾아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게 만든 사람, 충남 태안군의 천리포 수목원의 법인 감사이자, 나무 칼럼니스트인 고규홍 씨를8월 24일 CBS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나보았습니다.





◇ 일 년에 평균 5만㎞를 행군하며 나무와 교감





▶ 고규홍 씨 자신이 나무처럼 생기셨어요. (웃음) 오랫동안 뭔가에 집중하고 친하다 보면 닮아가나 봐요.





그렇게 됐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있지만 아직 그 경지에까지는 못 이르렀어요. (웃음) 늙어가면서 더 아름다워지는 것이 나무인 것 같아요.





▶ 나무칼럼니스트라는 말을 고규홍 씨가 처음 쓰셨다고 들었는데 다른 나라에도 나무칼럼니스트가 따로 있나요?





다른 나라까지는 제가 잘 모르겠고 (웃음) 국내에서 명함에 나무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을 쓰는 사람은 아직 못 봤어요.저도 나무칼럼니스트를 의도적으로 쓴 것은 아니고 9년째 계속 나무와 관련된 글과 사진을 하다 보니까 5, 6년 전쯤에 어느 인터넷 미디어 기자분이 저를 인터뷰하고 직업을 물어보더라고요. 그런데 딱히 직업이라고 분류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막말로 이야기하면 백수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했었죠. (웃음) 그런데 그 기자분이 나무에 대한 칼럼을 많이 쓰니까 나무칼럼니스트라고 하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뒤부터 인터넷에 기사가 돌면서 나무칼럼니스트로 불리게 되었어요.





▶ 1년에 보통 어느 정도나 다니시나요?





많이 다니는 편인데 자동차에 찍히는 거리를 기준으로 해서 보면 일 년에 평균 5만㎞가 찍히고 작년에는 좀 무리를 했더니 6만㎞가 넘게 나왔더라고요.한때는 자동차 수치를 가지고 굉장히 많이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따지고 보면 수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잠깐을 다녀도 나무와 얼마나 교감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 자동차로 5만, 6만㎞를 가자면 걷는 것은 그 이상이 아닌가요? 어딘가에 세워놓고 걸어야 하잖아요.





요즘은 길이 다 잘되어있어서 웬만한 마을은 자동차로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동차보다 더 많이 걷지는 않아요.





▶ 고규홍 씨 같은 분도 휴가를 가시나요?





사실 저는 일 년 내내 휴가니까... (웃음)제가 거주지는 분명히 경기도 부천시로 되어 있지만 머무는 시간은 짧습니다.





▶ 여행을 다닐 때 가족들과 함께 가기도 하나요?





집사람도 직장에 다니고 아이들도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방학이나 휴가철 이외에는 시간을 내기가 쉽지가 않아요. 게다가 저는 교통이 혼잡한 주말보다는 주로 평일에 다니기 때문에 거의 혼자 다니게 되죠.





◇ 나무보다 오래 산 사람이 없어 가늠하기 어려운 나무의 수명





▶ 아이들이 따라가면 좋아들 하나요?





큰아들이 내년에 스무 살이고 밑으로 11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 딸이 있는데 딸아이가 태어나면서 나무칼럼을 시작해서 그런지 딸아이는 나무에 대한 친밀도가 상당히 높아요.제가 가만히 보니까 남자 아이들은 동적인 것을 좋아하는데 여자 아이들은 식물에 대한 친밀도를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얼마 전 횡성의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딸아이가 이 동네에는 나무 없느냐고 묻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근처에 나무 있는 곳에 찾아가서 나무이야기도 해주고 그랬는데 참 좋아했어요.





▶ 2대 나무칼럼니스트가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웃음)나무 중에서 특히 큰 나무, 나이 많은 나무에 관심을 갖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큰 나무는 어떤 나무인가요?





특별히 ‘크다, 작다’의 수치적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닌데 제가 생각하기에 ‘큰 나무다’하는 것들은 주로 제가 나무답사를 다닐 때의 기준이 나이로 따지면 400, 500살이 넘은 것들이에요.





▶ 우리나라에 그렇게 오래된 나무들이 많이 있나요?





제가 9년째 찾아다니고 아직도 찾아다녀야 할 나무가 더 있을 정도니까 많은 거죠.심지어는 1,400살 정도 된 나무도 있으니까요.





▶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나이가 많은 나무는 어떤 나무인가요?





울릉도 도동항구의 절벽 위에 있는 향나무가 2,000살 됐다고 알려져 있는데 잘 자라지는 못하고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어요. 삶 자체를 힘들어하고 절벽 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생태조건이 좋지 않아서 그야말로 애면글면 살아가고 있는 상태죠.그리고 내륙에서 보면 강원도 삼척에 있는 1,400살짜리 은행나무가 우리나라 은행나무 중에서 가장 오래됐어요.





▶ 나무도 수명이 있나요?





제가 식물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귀찮을 정도로 쫒아 다니면서 여쭤보는 선생님들이 계시는데 그분들께 나무의 수명을 물어보면 ‘그거야 잘 모르죠.’하세요. 그래서 왜 모르느냐고 다시 물어보면 ‘일단 나무보다 오래 산 사람이 없거든요.’ 이렇게 얘기를 하세요. (웃음)물론 평균적으로 꽃을 많이 피운다거나 큰 열매를 많이 맺는 감나무나 배나무 같은 경우에는 에너지를 많이 소진하기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해요. 꽃을 피울 때 에너지를 많이 소진하거든요.





예를 들어 전라남도 구례 화엄사에 가면 지장암이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는데 그 뒷동산에 있는 벚나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다고 해요. 그것은 350살밖에 안 됐어요. 워낙 꽃을 화려하게 많이 피우다 보니까 에너지를 진즉에 많이 소모해서 오래 못 사는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나무가 완전히 죽을 때까지 확인한 사람이 없으니까 나무의 수명을 이야기하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말씀을 하세요.





제가 식물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9년째 나무이야기를 쓴다고는 하지만 식물학에 관해서 아직도 잘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나무를 계속 찾아다니게 된 것은 나무가 워낙 좋기도 했지만 이것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 하다 보니까 나무가 워낙 오래 살다 보니까 칼럼에서도 ‘이 나무가 그냥 나무가 아니다.’라는 표현을 가끔 씁니다.우린 그동안 식물학적으로 은행나무는 몇 월에 꽃을 피우고 몇 월에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어떻게 생기고 이런 것만 알고 있었는데 따져보니까 이 나무에는 사람살이가 그대로 들어 있지 않느냐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예를 들어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존경했던 큰 스님께서 절을 하나 지어놓고 거기에 지팡이를 꽂아놓으니까 그것이 몇 년 후 큰 나무로 자라나서 천 년을 살아온다는 나무도 있죠.그 나무에는 벌써 스님의 어떤 절개라든가 정신이 담겨져 있을 거예요.가깝게는 일제강점기에 ‘상록수’를 쓴 심훈 선생님 같은 분도 ‘상록수’라는 소설을 쓰기 직전에 자기 서재를 지어놓고 상록수를 먼저 한그루 심으셨어요. 충청남도 당진 필경사라는 곳이 심훈 선생님의 서재인데 아직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심어놓은 상록수가 향나무인데 아직도 자라고 있어요.





제가 큰 나무들을 찾아다니게 된 것이 나무는 말은 못하지만 제가 잘 살펴보면 그 안에는 분명히 나무를 심은 사람의 뜻도 있을 것이고 또, 때로는 이 나무 밑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그런 사연들을 한번 찾아본다고 하면 내가 식물학적으로는 아직 무지랭이라 하더라도 나무를 통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재미있게 또는 감동적으로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그런 가능성을 생각했어요.그러다 보니까 어린나무들 보다는 오랜 나무들일수록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겠다 싶었죠.





◇ 2m도 못 자라는 사람의 40년 동안 생명활동으로 7m의 키를 키워내





▶ 정말 나무가 보고 들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겠어요. 우리나라 역대 왕의 최후를 지킨 나무도 있다면서요?





고려시대의 마지막 임금이었던 공양왕은 나라를 잃은 뒤 강원도 원주로 추방되었다가 자객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 삼척까지 도망을 갑니다. 거기서 집을 짓고 피신생활을 하는데 물론 나중에는 자객에 의해 살해당해서 죽죠. 우리 조상은 예부터 음나무라고 해서 잡귀를 막는 나무가 있었는데 음나무의 특징은 어릴 때 가지가 자라나면서 줄기와 가지에 굉장히 억센 가시가 아주 많이 돋아나거든요.잘 자라면 잎사귀가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처럼 넓적하게 자라면서 넓게 펴지기 때문에 정자나무로 쓰기에도 아주 좋은 나무예요.





재미있는 것은 옛날에 ‘전설의 고향’을 보면 여자귀신은 하얀 소복을 휘날리며 나타나고 남자 귀신은 도포 자락을 휘날리면서 등장하잖아요. 공통된 것은 전부 옷자락을 넓게 휘날리면서 나온다는 건데 그 귀신들이 담을 넘어서 들어올 때 담장 가까이에 가시가 많은 나무가 딱 있으니까 그 가시에 걸린 거예요. 들어오다 걸려서 못 들어오니까 더 강한 것이 있나 보다 하고 도망을 간다고 우리 조상들은 음나무를 많이 심었거든요.





▶ 탱자나무는 안 되나요?





탱자나무는 크게 자라지를 않고 낮게 울타리로 자라기 때문에... (웃음) 그래서 옛날에는 심지어 음나무를 심을 사정이 안 된다면 가시가 많은 나무를 꺾어서 대청 위에 걸어놓는다고 했거든요.그런데 공양왕이 삼척의 근덕면이라는 곳에 피신을 갔다가 집을 지어야 하는데 그 마을에 크고 잘생긴 음나무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살해의 위협이 얼마나 두려웠겠어요. 그래서 그 공포를 조금이라도 막아줄 수 있는 곳에 집을 짓자고 해서 음나무를 앞마당으로 만들어 놓고 집을 짓고 산 거죠.





▶ 아직도 그 나무가 있나요?





아직 있습니다. 그 나무는 1,100살 정도 된 나무인데 음나무가 재미있는 것이 어릴 때는 가시가 많은데, 이 음나무가 가시를 달게 된 이유는 어릴 때 초식동물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자기보호책으로 스스로 가시를 낸 거예요. 1,100년이나 된 근덕면의 음나무를 보면 굉장히 굵고 키도 커서 누가 와서 먹을 수가 없어요. 그렇게 크게 되는 음나무들은 어릴 때 달았던 가시들을 다 떨어내고 아주 미끈하게 잘생겼죠. 너무 곧고 매끄럽게 잘 자라나 있어서 제가 근덕면의 음나무에게 ‘미스 코리아’라는 별명을 지어줬어요. (웃음)





▶ 우리나라에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가 있다고 들었어요.





경기도 양평의 용문사에 있는데 그 나무는 볼 때마다 생각을 많이 하게 해요.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는 멸망한 조국의 태자로는 살아갈 수 없다고 삿갓을 쓰고 금강산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고 떠납니다. 가다가 용문사에서 잠시 쉬다가 심은 나무라고 전해져 오는데 그 생각을 하면 이 나무는 나이가 1,100살 정도 된 것으로 봐야 하거든요.





그런데 나무의 키에 대해서는 이론이 참 많습니다.저는 다른 여러 가지 이론은 뒤로하고 문화재청에서 발표한 키를 믿을 수밖에 없는데 키가 지금 현재는 67m로 나와 있어요. 아시아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60m가 넘어가는 은행나무가 이거 한그루밖에 없죠. 그래서 가장 큰 나무가 되어 있는데 1962년에 천연기념물로 제정할 때 문화재청에서 조사를 할 때는 이 나무의 키가 60m였어요.





1,100살이나 먹은 나무가 60m였는데 그로부터 40년 정도가 지난 2003년에 다시 문화재청에서 조사를 했더니 60m짜리가 67m로 자라났다는 얘기거든요.그런데 제가 그 사이에 안 가본 것이 아니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그대로인 것 같아서 60m나 67m의 차이를 잘 모르겠어요.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1,200살이나 됐으면 생명활동도 늦고 그러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었는데 저는 40년이 넘고 50년 가까이를 살면서 2m도 채 못 자랐는데... (웃음) 이 나무는 1,100년이 넘어서, 40년 동안 제가 2m도 못 자라는 동안 7m라는 생명활동으로 키를 키워냈다는 것은 정말 신비하지 않은가 싶어요.





▶ 속리산의 정2품 소나무처럼 벼슬을 받은 나무도 있는데 그런 것은 어떻게 해서 벼슬을 받게 되나요?





그 소나무는 당시 세조임금의 가마가 지나갈 때 가지가 걸린다고 하니까 가지를 들어서 왕의 행차를 도왔다고 벼슬을 내린 것인데 지난 4월에 강풍으로 큰 가지 하나가 부러졌다고 뉴스에 나와서 걱정이 돼서 바로 찾아가 봤어요.그전에도 많이 상했었는데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안타까워요.





사람들이 정2품송의 좋은 유전자를 계속 유지하자는 취지에서 정2품송을 남자로 보고 부인송을 만들어서 결혼을 시켰어요. 10㎞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일 년에 한 번, 봄에 정2품송의 송홧가루를 채집해서 부인송에 수정을 해주는 행사를 하고 있죠. 두 그루를 비교해서 보면 정2품송은 위로 곧게 뻗어있고 부인송은 옆으로 넓게 펼쳐져서 제가 선입견이 있어서 그런지 가서 보면 어머니들 치마폭처럼 평안하게 넓게 잘 퍼져서 잘생겼다는 느낌을 줍니다.





◇ 호적을 가지고 토지세를 내는 나무도 있어





▶ 토지세를 내는 나무도 있다면서요?





우리나라의 조상들은 나무를 대상으로 해서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어요. 그리고 나무를 많이 의지하기도 했고 나무에 빌기도 하면서 나무를 사람처럼 여긴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경상북도 예천에 가면 세금을 내는 나무가 두 그루나 있는데 감천면 천향리에 가면 석송령이라는 소나무가 있어요. 옆으로 길게 뻗은 반송인데 600살 됐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됐고, 자기 이름도 가지고 있고, 주민등록번호도 가지고 있죠. 심지어는 자기 예금통장에 자기 땅도 2천 평정도 가지고 있어요.





굉장히 부자고 토지세도 꼬박꼬박 물고 있는데 그 나무는 1928년에 석송령이라는 자기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게 되었어요.당시 이수목 이라는 노인은 굉장히 부자였는데 많은 재산을 물려줄 자식이 없어서 늘 걱정이 많았대요. 마을입구에 있는 그 나무가 그 마을의 평화를 지켜주는 당산나무였는데 아직도 그 나무에서는 당산제를 드리거든요. 마치 예천군 전체 행사처럼 지내는데 이 나무 밑에서 낮잠을 주무시던 이수목 노인의 귀에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가 들리더래요.





시대가 일제강점기라 잘못하면 재산을 뺏기기 쉬운 상황이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 나무에게 물려주면 안전하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 길로 군청에 찾아가서 나무의 이름을 돌 석(石)자에 소나무 송(松), 영혼 령(靈)자를 써서 영혼이 깃든 나무라는 이름을 만들어주고 호적초본까지 해주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땅을 상속한 거예요.





▶ 누가 관리를 하시나요?





실은 마을회관의 노인 분들이 관리를 하는데 나무 바로 앞에 마을 회관이 있어요.나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시고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있고 울타리를 쳐놓고 창문으로 지켜보다가 문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치시죠.‘그 넓은 땅에서 농사를 짓고 거기서 거둬들이는 이익으로 마을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는 자랑을 자주 듣습니다.





▶ 건의를 해서 죽어가는 나무를 살려서 천연기념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무슨 얘긴가요?





물푸레나무라고 워낙 단단해서 옛날에는 농사지을 때 달구지의 바퀴로 쓴다든가 서당에서는 회초리로도 쓰이고, 워낙 쓰임새가 많다 보니까 제대로 자라기도 전에 다 베어져서 친숙한 나무지만 크고 오래된 나무가 없었어요. 그런데 문화재청에서 천연기념물로 제정하면서 경기도 파주에 있는 나이가 150살 되고 키가 15m 정도 된 나무가 가장 오래되고 큰 나무라고 지정이 되어 있었어요.





가서 보니까 물론 예쁘기는 했지만 물푸레나무를 좋아하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나무라고 하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동안 물푸레나무만 집중적으로 찾아다녔죠. 그러다가 경기도 화성군 전곡리에서 물푸레나무를 하나 발견했는데 나이는 350살 정도 됐고 키도 30m 가까이 되는 굉장히 큰 나무였어요. 죽어가는 나무는 아니었고 마을 뒤편에 거의 방치되어 있는 상태였는데 6․25때까지만 해도 당산제를 지내던 나무인데 6․25이후로는 마을이 점점 없어져서 지금은 그 앞에 할머니 한 분만 살고 계시더라고요.





어떻게든 보존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천연기념물 제정 절차가 어떤지 전혀 모르면서 문화재청 홈페이지의 천연기념물과에 이메일로 진짜 떼를 썼어요. 양식이나 절차를 하나도 모르고 제가 조사한 자료와 사진을 계속 올렸는데 담당자분이 보시고 가치를 판정하셔서 재작년에 천연기념물 470호로 마침내 지정이 되었죠.





▶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면 관리해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백미선 (2007.08.26 00:08)
헥. 다 읽는데 정말 오래 걸리네요.^^' 인터뷰 분위기를 상상하며 읽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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