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ro > 언론속의 [나]
언론속의나
제목 나무 칼럼니스트 “나무가 말을 걸다” -리빙센스 2013.4 날짜 2013.04.07 11:49
글쓴이 고규홍 조회 2355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의 인생 특강 “나무가 말을 걸다”
리빙센스 | 입력 2013.04.04 10:36

 

가만히 나무를 바라보며 눈인사를 나누고 쓰다듬으며 체온을 나누는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 그는 나무의 생태뿐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체로서 나무의 가치에 대해 들려준다. 나무와 사람의 행복한 공존을 이야기하는 고규홍을 만났다.

 

"천둥처럼 나무가 내게 걸어왔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불쑥 뛰어든 나무와의 만남을 이렇게 표현한다. 어떤 조짐도, 예고도, 설렘도, 양해도 없이 천둥이 치듯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운명의 순간을 이토록 간단하게 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건 그가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신문사 기자로 글밥을 먹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보다 정확하게 그 시작을 표현할 말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15년의 세월을 그는 나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이라고 부른다.

 

Q 나무가 성큼성큼 다가온 날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A 늦여름의 어느 날 출근길에 문득 어떤 나무가 있는지 궁금해졌어요. 집을 나서니 아파트 단지에, 길가에 나무가 무척 많았어요. 개나리, 쥐똥나무, 가죽나무, 플라타너스…, 알든 모르든 수첩에 적어보았어요. 가짓수를 헤아리니 무려 50여 가지가 돼서 놀랐죠.

 

Q 그날을 계기로 신문사 기자직을 그만두게 되었나요?

A 그렇진 않아요. 그때 제 나이가 마흔 살이었어요.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고민들이 시작되었는데, 만약 일을 바꿀 기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다 싶었죠. 외환위기로 동료 기자들이 구조조정을 당하던 당시에 스스로 사표를 냈으니 무모했던 거죠. 나무와의 인연은 그 뒤에 시작되었어요.

 

Q 평소 나무를 좋아했다거나 관심이 있으셨겠죠?

A 나무와는 어떤 인연도 없었어요. 그랬으니 나무가 천둥처럼 내게 다가왔다고 말하죠. 그런데 "잠재된 게 없으면 충동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르더라고요. 내게 왜 본능과도 같은 나무에 대한 끌림이 있었을까. 어릴 때 부모님은 일하러 나가고 누나는 학교에 가고 나면 혼자 집에 있었어요. 워낙 후미진 동네라 놀 친구도 없었어요. 혼자서 큰길에 나가 가로수에 줄을 묶고 놀았던 기억이 남아 있어요. 나무가 어릴 적 나와 교감한 유일한 생명체였던 셈이죠.

 

Q 전국 각지에 흩어진 나무를 찾아가는 여정이 힘들지는 않나요?

A 땅끝 마을 해남부터 강원도 고성까지, 섬을 제외한 곳은 거의 가본 것 같아요. 육체적으로 버거운 부분이 있고 밤 시간에 야생동물이라도 맞닥뜨리면 겁도 나지만, 요즘은 그보다 외로움이 커요. 홀로 여관방에 머물기 싫어서 1박 2일은 안 하려고 해요. 아무리 몸이 고단해도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지요.

 

Q 여러 해에 걸쳐 성장하는 나무를 지켜보는 경우가 있겠네요.

A 나무 한 그루를 제대로 보려면 2년간 봐야 한다고들 해요. 잎이 나고 꽃이 피고 단풍이 드는 시기를 다 봐야 한다는 뜻이죠. 현실적으로 한 그루를 온전히 보는 일이 쉽지 않아요. 저도 처음에는 새로운 나무를 찾으려고 했는데, 요즘은 주로 노거수를 찾아요. 이미 아는 나무라도 한 번 더 보고 교감하려고 하죠. 나무가 있는 동네 사람들을 다시 만나 이야기 나누는 일도 빠뜨릴 수 없고요. 나무 이야기는 결국 나무를 둘러싸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Q 힘든 과정을 겪은 만큼 기억에 남는 나무가 있겠죠?

유독 맘에 남고 뿌듯함마저 드는 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모두 천연기념물이 되었어요. 천연기념물 제470호인 경기도 화성 전곡리의 물푸레나무는 지정 신청부터 모든 절차를 나 혼자 해냈더니 주위 사람들이 굉장히 큰일로 인정해주더군요. 또 하나는 천연기념물 제492호인 경남 의령 백곡리 감나무예요. 제 책 < 이 땅의 큰 나무 > 에 실려 알려지기 시작한 나무인데, 감이 열리지 않으니 마을 사람들은 쓸모가 없다고 베어내자고 했어요. 그런데 감나무치곤 아주 크고 훌륭한 나무라 지켜주고 싶었어요. 사실 나무 옆에 사는 사람은 비교 대상이 없으니까 그 나무의 가치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베일 위기에 처한 나무에게 천연기념물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최고의 지위를 부여해 국가에서 지켜주는 대상이 되었으니 보람 있죠.

 

Q 말씀대로 나무는 공기 같은 존재죠. 그렇다고 새삼스레 관심을 가져야 할까 싶고 방법도 모르겠어요.

A 나무에 대해 모른다고 살면서 불편한 건 아니죠. 제가 아주 좋아하는 생태학자 에리슨 칼슨의 유고집에 이런 얘기가 나와요. "자연을 아는 것은 자연을 느끼는 것의 절반만큼도 중요하지 않다." 나무의 이름이 뭔지 알려고 차에 늘 식물도감 3권을 싣고 다니다가 그 구절을 읽고 책을 치웠어요. 관심을 갖는다는 건 지식적으로 접근하기보다 나와 같은 또 하나의 생명체가 있음을 아는 일이에요.

 

Q 나무 이름부터 외우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 위로가 되네요.

A 생태적인 관점의 관심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없어요. 우리 주변의 나무들이 우리를 지켜줬고 그 중심이 되었다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해요. 큰 나무가 있어서 우리가 기대어 살아왔음을 인정하는 일이 바로 관심의 시작이죠.

 

Q 나무에 기대어 살아왔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요?

A 사람처럼 직립해서 자라는 생명체는 나무밖에 없어요. 호들갑처럼 느낄지 모르겠지만 사람의 사유(思惟)도 나무에서 나온 것이죠. 어느 날 두 발로 걸어가던 사람이 앞을 막아서는 생명체를 발견하고 그걸 올려다봤겠죠. 그 잠시 멈춘 사이에 사유라는 게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건 다른 학자의 책에도 나오는 내용이에요. 먹을거리만 찾으러 다니던 사람들이 나무를 보고 나서 달라졌을 거예요. 자연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 사유의 실마리를 주는 건 나무밖에 없어요.

고규홍 교수는 나무가 땔감이나 집의 골격이 되고 가구가 되는 수준을 넘어 천상과 지상을 잇는 매개로서 형이상학적인 의미도 갖는다고 말한다. 예로부터 자신보다 더 크고 힘이 센 대상에 기대며 살아온 사람들이 하늘에 가까운 생명체인 나무에 기대어 소원을 빌었던 것이다. 향나무의 향에 가족의 안녕을 비는 마음을 담아 하늘까지 닿기를 바랐고, 당산나무 앞에서 제를 올리며 풍족한 삶을 기대했다. 조상을 지키듯 목숨을 바쳐가며 사람들이 나무를 지키려 했던 이유들이다. 나무 한 그루에 나약한 인간들의 모든 삶이 담긴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시공간을 초월한 세상이 오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대지만, 고규홍 교수는 나무는 하늘의 또 다른 이름으로 남아 있다고 믿는다.

 

Q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네요. 마치 사람 같아요.

A 그럼요. 나무마다 성격과 표정이 있어요. 신기하게도 온순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가면 나무도 순해요. 삶이 팍팍한 도시의 나무는 생김새도 거칠어 보이고요. 처음에는 그냥 느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사람이 순하다는 건 개인이 가진 기질일 뿐 아니라 기후나 지형 등의 영향을 받는 거니까 단순히 느낌만은 아닌 거죠. 충남 아산의 맹사성 고택에 있는 나무가 참 순해 보인다 했더니 아산이 산도 야트막하고 편안한 곳이었어요.

 

Q 사람처럼 일생을 보내며 힘든 삶을 사는 나무도 있겠죠?

A 처절하게 죽어가는 나무가 많아요. 신호등이나 간판을 가리지 않게 하려고 도시 가로수들은 싹둑싹둑 잘려나가죠. 서울의 어느 극장 앞 큰 나무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어요. 나무를 없애고 싶어 하는 누군가가 뿌리에 석유를 뿌린 거죠. 천연기념물 제355호인 전주 삼청동의 곰솔은 밑동에 드릴로 구멍이 뚫리고 독극물이 들어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그 지역이 택지 지역으로 결정돼 나무가 자라고 있던 땅의 주인은 부자가 될 수 없었겠죠. 전주 시민들이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인 끝에 기적적으로 가지 2개만 되살아나기 시작했어요. 문화재청에서 천연기념물을 해제할까 하다가 반면교사로 삼자는 의미에서 보호하고 있어요. 억울하게 죽어간 나무라고 할 수 있어요. 눈물이 날 정도로 흉측해진 그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에요.

 

Q 누군가를 사랑하면 닮고 싶고 닮아간다고 해요. 수많은 나무 중 그런 대상이 있나요?

A 전 감나무를 닮고 싶어요. 감나무는 어느 집에나 있었던 흔한 나무죠. 열매를 얻기 위해서도 그렇고 장독대 옆에 심어 뱀을 쫓으며 아낙들을 보호했다죠. 워낙 흔하다 보니 평소엔 존재감이 없는데 태풍에 쓰러지기라도 하면 그 허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런 감나무처럼 내가 죽은 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Q 이제 4월이에요. 특별한 만남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나무가 있다면요?

A 4월에는 목련이 한창이죠. 시간 여유가 있다면 4월 중순에서 말 사이에 천리포수목원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지정된 곳인데, 그 무렵에 4백여 종 2천 그루의 목련이 만개합니다. 지름이 40㎝에 이르는 거대한 목련도 있고, 꽃잎이 길쭉하게 뻗는 별목련, 황목련 등도 볼 수 있어요.

 

Q 사람들이 교수님에게 거는 기대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A 엑셀 파일로 정리한 나무를 보면 1천5백 개체수 정도가 돼요. 그중에서 일반 교양인들에게 추천한 건 50가지에 불과하죠. 그러고 나니 일등만 기억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내가 본 개체수를 다 내보이는 일이 필생의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작년에 펴낸 < 한국의 나무 특강 > 이란 책이 그간 해온 작업의 중간 결산쯤이라면 앞으로는 심화 단계라고 생각해요. 체력과 경제적이 뒷받침된다면 작업의 깊이와 외현을 확장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글쓰기 인생의 마무리는 소설로 하고 싶어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는 면에서 문학 청년이랄 수 있죠.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본심에 작품이 오른 적도 있어요. 언젠가 소설을 써보고 싶은데, 결국 나무 얘기도 나오지 않을까요?

아귀다툼하듯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흔들림 없이 서 있는 나무가 있다. 고규홍 교수는 나무가 있는 곳은 사람이 사는 곳임을 알리고 싶어 한다. 나무가 소리 내어 말하지 않지만 그는 교감을 통해 수십 수백 년 이어온 나무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고 그만의 문학적 감성을 더해 사람들에게 글로 전한다. 그 안에 나무에게 빚지고 사는 사람들이 그 소중함을 알고 함께 살아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사람을 취재했던 그는 나무를 취재하기 위해 어디로든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
- 1960년 인천 태생으로 서강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신문사 기자로 12년간 일했다. 그 뒤 15년째 전국의 나무를 찾아다나고 있고, < 이 땅의 큰 나무 > , < 절집나무 > , < 옛집의 향기 나무 > , < 알면서도 모르는 나무 이야기 > 등의 책을 냈다. 현재 태안반도 천리포수목원 이사이며 한림대와 인하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홈페이지 솔숲닷컴(http://solsup.com)을 통해 그가 만난 나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취재_임상범(프리랜서) *사진_조영수

 

글쓴이 비밀번호
보이는 순서대로 문자를 모두 입력해 주세요
등록
목록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