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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에서 사람의 무늬를 찾다 - 서강Weekly 2017.6 날짜 2017.06.29 11:57
글쓴이 고규홍 조회 159

나무에서 사람의 무늬를 찾다

 

흔히들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을 담는다는 말을 한다. 사람이 그렇듯, 나무도 그렇다. 나무는 매년 세월을 담은 나이테를 몸통에 그린다. 나이테가 쌓인 만큼 담긴 나무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여 본 적이 있는가? 고규홍(국문 79) 동문은 나무의 생에서 쌓인 이야기를 찾고 글로 옮긴다. ‘나무 칼럼리스트혹은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 동문의 이야기를 서강 Weekly에서 들어 보았다.

 

# 사람의 사연을 캐던 기자, 나무의 사연을 궁금해하다

고규홍 동문이 나무칼럼을 쓰기 전에는 중앙일보 기자로 생활하였다. 11년을 기자로 일했고, 취재기자로 평균 이상은 했지만 마흔 살이 되던 1999, ‘지금이 새로운 일을 시작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꿈이 작가였어요. 그래서 국문과에 갔고, 신춘문예 최종 후보에 진출한 적도 있었지만 등단은 하지 못 했어요. 사실 기자를 택한 건 글을 쓴다는 점에서 작가에 가장 가까운 직업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순간 미련 없이 그만두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표를 낸 후 두 달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로 결심하고 천리포 수목원에 짐을 풀었다. 쌀과 김치만을 갖고 들어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자는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눈 내리는 겨울날, 산책을 하는데 하얗고 큰 꽃이 핀 것을 보았다. 팻말에는 목련이라고 쓰여 있었다. 고 동문은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고 한다. ‘봄을 알리는 꽃인 목련이 어떻게 눈 내리는 12월에 피어 있는가?’ 그 사연을 캐 보고자 나무에 대한 글을 쓴 것이 어느새 19년째가 되었다.

그렇게 나무의 사연을 웹사이트에 기록하던 그의 사연이 기자협회에서 발간하는 잡지의 퇴직기자 근황코너에 실렸고, 이를 눈여겨 본 한 PD의 제안으로 라디오에 고정출연을 하게 되면서 고 동문이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환경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그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 탈춤과 책이 함께 한 서강에서의 기억

고규홍 동문의 재학 시절은 시대와 맥을 같이한다. 역사의 격동기였던 1980년 전후에 대학생 시기를 겪은 고 동문은 탈춤반 활동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꼽았다.

탈춤 자체에 사회 비판적 요소가 많기도 하고, 시위를 하면 탈춤반 학생들은 악기를 갖고 있으니 맨 앞에서 주도적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학교의 출결 제도가 굉장히 엄격하잖아요? FA를 받지 않기 위해 수업은 들어가야 하고, 시위도 참석해야 하니 저학년 때는 이래저래 바쁜 나날이었습니다.”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대학 시절 친구들과 철학 서적을 읽던 것은 지금까지 고 동문의 공부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전환 시대의 논리등이 당시에는 모두 불온서적이라 숨어서 읽어야 했어요. 한글 번역본은 존재하지 않아서 먼저 일본어를 배우고, 그 이후에 거듭된 복사로 흐려질 대로 흐려진 일본어 서적을 읽었죠. 그 때 책을 많이 읽는 습관이 들어서, 지금도 책을 많이 사고 자주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에게 서강은 자랑스러운 존재이다. “겸손하고 조용히 책임을 다하는 서강의 문화가 좋다는 고규홍 동문은 앞으로도 서강의 정신이 사회에 기여할 것이라 말하였다.

 

# 나무가 간직한 인간의 역사

고규홍 동문을 칭하는 말은 나무 인문학자이다. 그를 지칭하는 인문이라는 단어에 대해 물었다.

사람()이 남긴 무늬()를 탐색하는 것을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식물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 나무에 대해 식물학적으로 접근하려고 하면 전공자를 따라갈 수가 없어요. 하지만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 흔적을 탐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 틈새를 제가 공략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무의 이야기를 찾아 다니기 좋은 것은 노거수(老巨樹: 수령이 오래된 거목)이다. 오래 살았던 만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고 동문은 노거수를 찾아 다니며 그 나무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찾고, 거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제가 쓴 글 중에 나주 금사정에 있는 동백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나무가 심어진 것은 기묘사화가 일어났던 조선 중종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죠. 그 때 사화를 피해 비밀결사를 만들고, 정자를 지으면서 동백나무를 심었다고 해요. 여기까지가 역사에 남은 이야기라면, 왜 하필 동백나무를 심었는지를 파헤치는 것이 제가 하는 일이에요.”

그렇다면 고규홍 동문 본인은 어떤 삶의 무늬를 남기고 싶을까. 그는 감나무와 같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어릴 때 감나무는 어느 집에든 있었어요. 그래서 소중함을 잘 모르죠. 하지만 우리 집 감나무가 벼락을 맞거나, 병들어서 베어 버리면 그 허전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저는 그것을 뒤늦은 존재감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살아 있을 때 저를 많이 드러내면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죽은 뒤에 고규홍이라는 나무를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도 있듯, 난 자리가 느껴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무는 늘 우리 곁에 있다. 봄에는 꽃나무가, 여름에는 녹음(綠陰), 가을에는 단풍이, 겨울에는 눈꽃이 함께한다. 내 곁에 나무가 함께한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고규홍 동문은 나무 그늘에 서서 30초간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쉴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날숨으로 내뱉는 이산화탄소는 나무가 광합성을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존재에요. 그리고 나무의 몸 속을 한 바퀴 돌아 나온 것은 우리가 숨을 쉬는 데 가장 필요한 산소이죠. 나무와 인간은 결국 한 몸일지도 몰라요.”

그간 스쳐 지나갔던 나무 한 그루를 붙잡고 소통을 해 보면 어떨까? 어쩌면 우리는 나와 한 몸인 나무를 만나, 그가 간직한 이야기의 한 자락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김수완 (학생기자, 국문 13) swank2357@sogang.ac.kr

사진| 오인도 (학생기자, 신방 15) dhdlseh@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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